B&W PX8 S2 — 30일이상 실사용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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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요약
- 소재, 디자인, 음질 모두 100만원 값을 한다. 하지만 모든 음악에 다 잘 맞진 않는다.
- 스튜디오 사운드에 최적화된 헤드폰. 브리티시 팝, 힙합, 록이라면 소름 돋는다.
- 노이즈캔슬링은 기대하지 말 것. 버스, 지하철에서는 그냥 끄고 써라
30일 넘게 써봤다. 출퇴근 2시간, 업무 중 5시간. 하루 7시간 가까이 귀에 달고 살았으니 이제는 꽤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헤드폰이다. 근데 그 장점이 너무 명확해서, 오히려 범용성은 떨어진다.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헤드폰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글은 "이 헤드폰이 얼마나 좋냐"보다 "이 헤드폰이 어떤 사람에게 맞냐"에 더 가깝다.
1. 110만원, 그 값을 하느냐?
나는 웜 스톤 컬러를 선택했다. 베이지 톤의 색상인데, 고급 소파나 가죽 가방에서 봤을 법한 그 컬러다. 막상 받아보면 어떤 옷에 매치해도 튀지 않고 오히려 포인트가 된다. 오닉스 블랙도 고급스럽다는 평이 많지만, 웜 스톤은 유독 계절을 타지 않는다는 인상이다.
소재도 실제로 나파 가죽을 쓴다. 이어패드가 피부에 닿는 순간 그냥 안다. 이게 싸구려가 아니라는 걸. 부드럽게 밀착되면서도 끈적이거나 답답하지 않다. 전작 PX8 대비 하우징도 더 슬림해졌고 헤드패드 쿠션도 두꺼워져, 전체적으로 더 날렵하고 고급스럽다는 인상을 준다.
착용감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야 할 것 같다. 이어컵과 밴드 연결부가 각도를 가지고 꺾여 있는 구조라서, 착용하면 귀 뒷부분부터 위쪽으로 압력이 오는 느낌이 있다. 머리 위를 눌러주는 압박감은 거의 없는데, 귀 주변 압력은 장시간 착용 시 느껴질 수 있다. 하루 7시간 착용하는 나 기준이 그러니, 일반적인 사용 환경이라면 크게 문제될 수준은 아니다. 무게도 310g으로 소니나 보스의 경량 경쟁 제품보다는 조금 무거운 편이라는 점도 참고하자.

2. 어떤 플레이어를 쓰는지도 중요하다.
스포티파이, 유튜브 뮤직, 애플 뮤직, 멜론을 다 돌려봤다. 유튜브 뮤직이랑 멜론은 솔직히 이 헤드폰의 성능을 다 쓰기에 음질이 아깝다. 논외로 하고, 애플 뮤직과 스포티파이를 비교했을 때 B&W의 특색을 더 잘 살려주는 건 스포티파이였다.
내가 느끼기에 애플 뮤직은 음원 전체를 비닐로 한 겹 감싸고 그 밖에서 듣는 것 같은 사운드가 난다. 반면 스포티파이는 굉장히 Raw한 상태를 표방하려는 음향을 준다. 플레이어마다 음원을 압축하거나 처리하는 방식이 다른 것 같고, 그 차이가 헤드폰 성능이 올라갈수록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건 어느 정도 성능 이상의 헤드폰을 쓰기 시작하면 반드시 한 번쯤 마주치게 되는 문제다.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글로 한번 풀어볼 생각이다.
지금은 스포티파이 + B&W 조합으로 쓰고 있다.
3. 비틀즈 음악이 더욱 좋게 들린 이유
B&W PX8 S2의 음향적 특색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캬랑하고 쨍한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 사운드.
드라이버는 40mm 카본 콘으로, 전작의 것을 계승하되 새로운 샤시와 모터로 업그레이드됐다. 여기에 24비트 DSP와 전용 앰프·DAC를 탑재해 무선임에도 불구하고 유선 수준에 가까운 해상도를 구현한다. aptX Lossless와 aptX Adaptive를 지원하며, USB-C 유선 연결 시 최대 24bit/96kHz 고해상도 입력도 받는다.
콘서트 홀 분위기나 야외의 울림, 리버브가 많이 걸린 음악들은 그 맛을 온전히 살려주지 못하는 느낌이 있었다. 공간감을 인위적으로 부풀리기보다 소리 자체를 정확하게 재생하는 쪽에 특화된 헤드폰이기 때문이다.
이걸 가장 극적으로 느낀 순간이 있었다. 우연히 비틀즈의 Yesterday를 들었는데, 살면서 이 곡을 이렇게 정확하게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정확하다'는 표현이 가장 맞다. 악기의 위치, 보이스 톤, 밸런스까지 모든 게 제자리에 있는 느낌이었다. 놀라서 찾아봤더니 비틀즈가 믹싱할 때 B&W 모니터 스피커를 사용하는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다고 한다. 결국 그 스피커로 믹싱한 음악을 같은 계보의 헤드폰으로 들으면 가장 원본에 가깝게 들리는 것이다. 믹싱 엔지니어가 의도한 그 사운드 그대로.
그래서 브리티시 팝, 힙합, 록처럼 스튜디오 반향이 적고 공간감이 절제된 장르는 진심으로 강추한다. 특히 록은 B&W 특유의 청량한 음색과 정말 잘 맞는다. 반대로 오케스트라, 재즈 라이브, 환경음악처럼 공간과 잔향 자체가 음악의 일부인 장르에서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4. 전작보다 좋아졌다는 노이즈캔슬링, 정말?
솔직하게 말하겠다. 이 헤드폰의 노이즈캔슬링은 기대 이하다.
전작 대비 마이크가 6개에서 8개로 늘었고, ADI PureVoice 기술도 탑재했다. 스펙 상으로는 분명히 개선됐다. 그런데 실사용에서 체감은 좀 다른 이야기다. 저음역대의 소음, 이를테면 지하철 바닥의 진동음이나 에어컨 소리 같은 건 어느 정도 잡아준다. 문제는 파열음이나 마찰음 같은 고음역대의 소리다. 이 영역에서 오히려 소리가 튀는 모습이 있어서,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쓰다 보면 생각보다 많이 거슬린다.
차라리 나는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끄고, 좋은 나파 가죽이 주는 자연스러운 폐쇄력만 믿는 편을 추천한다. 이어패드가 귀를 잘 감싸주는 덕분에 물리적 차폐만으로도 꽤 충분하다.
어차피 이 헤드폰을 사는 이유는 노이즈캔슬링이 아니다. 음향과 해상도, 그리고 좋은 음악을 제대로 듣기 위한 도구로 접근하는 게 맞다. 없는 기능이라 생각하고 사는 게 마음 편하다.
5. 110만원짜리 헤드폰의 진짜 음질, 우리는 들기 어려울 것
이 헤드폰이 지원하는 aptX Lossless는 무선 환경에서도 CD 품질 이상의 무손실 오디오를 전송할 수 있는 코덱이다. 이게 이 헤드폰의 진짜 패를 쥔 기능인데, 문제는 국내에서 이 코덱을 지원하는 기기가 사실상 없다. 헤드폰은 준비가 됐는데 무대가 안 깔린 상황이다. 완전한 성능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LDAC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도 소니 제품군에 익숙한 사용자라면 아쉽게 느낄 수 있다. 단, B&W의 방향성은 처음부터 퀄컴 계열 코덱에 맞춰져 있고, aptX Adaptive만으로도 일상적인 고음질 감상에서 부족함은 없다.
6. 그래서 사도 되냐?
장점이 명확하다는 건 결국 단점도 명확하다는 뜻이다.
B&W PX8 S2는 특정 장르, 특정 사운드에서의 해상력과 정확도가 압도적이다. 그리고 그 정확도야말로 이 헤드폰의 전부다. 음악을 장르 불문하고 편하게 즐기고 싶은 사람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믹싱 엔지니어가 의도한 그대로,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듣고 싶은 사람에게 맞는 헤드폰이다.
B&W가 수십 년간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를 만들어온 영국 브랜드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헤드폰의 성향은 처음부터 예고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범용성을 포기하는 대신 한 가지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선택. 그리고 그 한 가지가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이 헤드폰은 충분히 값어치를 한다.
이런 분께 추천 — 브리티시 팝·힙합·록을 즐겨 듣는 분 / 스튜디오 모니터 사운드가 취향인 분 / 스포티파이 헤비 유저 / 소재와 디자인에도 기꺼이 투자할 수 있는 분
이런 분께는 비추 — 통근 시 노이즈캔슬링이 핵심인 분 / 오케스트라·재즈 라이브·공간감 풍부한 장르 위주인 분 / 장르 불문 범용적으로 쓰고 싶은 분 / 가성비가 우선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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